독자의 삶

[중혁독자] 讀者之生 독자의 삶 6





독자지생 6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그 후로 유중혁은 한수영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자신이 본 걸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아직도 그 책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책이라 하기도 민망하다. 아무 것도 품지 못한 책은 여전히 유중혁의 가방 속에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책의 내용은 머릿속에서 점점 잊혀갔다. 그러나 그 어떤 책을 읽어도 ‘독자의 삶’은 퇴색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야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뚜렷해졌다. 가장 많이 팔린 책도, 철학적인 책도, 해학적인 책도, 그 책만큼 읽고 싶지 않았다. 유중혁은 한숨을 쉬고 책을 내려놨다.

주마다 서넛씩 서점에 들렀지만 유중혁은 단 한 권도 구매할 수 없었다. 온갖 장르를 섭렵해도 마음에 차지 않았다. 아무리 잘 쓴 책이어도 금방 내려놓곤 했다. 오늘도 얻은 것 없이 돌아 나가려는 찰나 가판대에 있는 광고판이 눈에 띄었다.


‘나는 독자에게 삶을 주지 못했다.’


그 문장이 눈에 박혔다. 유중혁은 가판대 위의 책을 들어 그 제목을 확인했다. ‘죄인, 참회’는 범죄자였던 여성이 수감생활을 기록한 에세이였다. 광고 문구에 홀려 한 달 만에 책을 구매했다.

그녀가 말하는 ‘독자’란 누구인가. 손끝이 선뜩했다. 유중혁은 이 책의 저자를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는 ‘독자’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책 제목은 달랐지만 책 내용은 짐작이 갔다. 이수경의 에세이. 김독자의 삶에 고통을 준 책. 그 책이다.

유중혁은 책장을 열었다. 그 어떤 것도 그의 독서를 방해하지 못했다.


[남편은 아이를 독보적인 존재로 키우고자 했다. 나는 그것을 반대했다. 아이가 위대한 이름을 갖길 원하지 않았다. 그저 스스로 행복하길 바랐다. 아이는 이미 내게 특별했기에 아이의 생애 정도는 평범해도 좋다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평범하지 않다. 운명은 흥미위주다.

행복하리라 다짐했던 나날들은 바스러져갔다. 고통, 비명, 눈물로 삶은 찢겨나갔다. 모든 걸 끝내고 싶었지만 끝낼 수 없었다.]


유중혁이 아는 내용이었다. 김독자가 알고 있을 내용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내 삶은 암흑이 아니었다. 나를 지탱해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나는 살아왔다. 소설에 갈등과 대립이 있듯 내 삶에도 갈등이 있었다. 그 날, 갈등이 최고조에 일렀다. 해소 방법은 죽음뿐이었다. 내가 죽든 남편이 죽든, 누군가 죽지 않으면 고통의 굴레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굴레를 뒤집어 쓴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 손으로 이 굴레를 끊고 좀 더 나은 삶을 아이에게 선물하자.

나는 아직도 믿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동화책을 손에 쥐고 끝나는 게 싫다고 하던 아이가 손에 칼을 쥐고 반복되는 일상을 끝내버렸다. 칼에 찔린 남편은 아이를 던졌고 벽에 머리를 부딪친 아이는 죽었다. 즉사였다. 남편은 내 목을 졸랐다. 억세고 끔찍했던 손은 점점 기력을 잃어가더니 과다출혈로 모든 걸 놓고 갔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마음을 먹었더라면. 그랬더라면.

나는 독자에게 삶을 주지 못했다.]


유중혁이 모르는 내용이었다. 김독자 또한 모를 내용이었다.


“엄마, 저 오빠 왜 울어?”


지하철이 덜컹거렸다.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여자 아이가 건너편에 앉은 유중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에 아이의 엄마는 딸에게 조용히 하라며 타일렀다. 그런다고 한들 아이의 호기심은 사라지지 않고 유중혁의 눈물이 지워지는 건 아니었다.

김독자는 분명 존재했다. 이 곳에 존재했다. 종잇장 속에 숨어 있는 게 아니라 같은 하늘 아래에 존재했다. 그러나 알지도 못한 사이 잿더미로 변했다. 무언가 뺏긴 기분이었다. 사지를 뜯긴 기분이었다. 유중혁은 김독자의 흔적을 찾으려 떨리는 손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이수경은 아이가 저지른 죄를 스스로 뒤집어 썼다. 김독자의 행동을 막지 못한 것을, 먼저 하지 못한 것을 가책하며 교도소에서 참회했다. 그녀는 아이의 업보를 가져가며 후회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하나, 원통한 게 있었다.


‘그 누구도 김독자를 모른다.’


독자의 삶, 독자가 숨을 내쉰 이 세계에 독자가 존재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그리하여 이수경은 김독자의 삶을 알리기 위해 에세이를 집필했다. 단 한 명이라도 독자의 삶을 알아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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