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중혁독자] 이웃집이 수상하다

계간중독 여름호 / 소재와 영감을 주신 사르님과 웨지님께 감사드립니다.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wR11KBaB86U



계간중독: https://5umm3r-jhdj.tistory.com/9?category=1062212 




<금요일>


똑똑똑


김독자는 잠에서 깨어났다. 방은 아직 어두컴컴했고 빗줄기가 창문을 때렸다.


또옥또옥또옥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이게 무슨 소리지?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오전 8시 53분. 이 이른 아침부터 누구야……. 같은 층에 사는 애들은 이미 등교가 끝났을 테고 출근할 사람들도 전부 출근했을 시간이었다. 김독자는 몸을 웅크려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규칙적으로 들린 소리는 환청이라 여겼다. 그때 초인종 벨이 울렸다. 아침이라 가뜩이나 귀가 예민한데 초인종 소리가 천둥 같았다. 제발 좀 그냥 가라고 빌고 빌었지만 바깥에 있는 사람은 끈질겼다.


“아, 쫌!”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김독자는 침대에서 나와 일부러 발걸음을 크게 냈다. 달콤한 수면을 방해하는 사람에게 용서란 없었다. 도어락 버튼을 누르고 문을 벌컥 열었다.


“누!”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해! 그렇게 말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상대방의 얼굴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잘생긴 남자가 김독자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추적추적 비가 내려 온 세상이 회색빛인데도 남자가 서있는 곳만이 빛이 났다. 꿉꿉한 비 냄새도 그의 앞에서는 상쾌하게 변했다. 그러나 뭐가 그리 불만인지 그는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세상은 손해를 보고 있었다.


“누구신지……?”

“옆집에 이사 왔다.”


옆집? 김독자는 1202호에 살고 있었다. 그가 사는 복도식 아파트에는 층 당 집이 다섯이었다. 1호와 2호가 붙어있었고 그 옆에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자리했다. 엘리베이터 복도를 지나치면 3호와 4호, 5호가 있었다. 1201호에는 남자 혼자 살고 4호와 5호에는 각각 가족이 살고 있었다. 1203호는 꽤나 오랫동안 빈집이었는데 이제야 누군가 입주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옆집에 이사 왔다? 초면인데 말하는 게 굉장히 시건방졌다. 그런데도 어찌나 잘생겼는지, 저런 걸 얼굴값이라고 하는구나……. 침이 고여 벌린 입 밖으로 흐를 뻔했으나 정신 차리고 침을 삼켰다.


“그런데 왜…….”


옆집 사는 건 알겠는데 여기까지 어인 행차신지? 귀한 수면을 방해한 그에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꾹 참아냈다.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건네었다. 넓적하고 따끈따끈한 시루떡이었다. 요즘도 이사하고 떡을 돌리나? 생긴 거랑 다르게 논다.


“이사 떡이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럼 이만.”


김독자는 누군가를 상대할 정신이 없었다. 어제도 급하게 마감을 했고 오늘 저녁에도 원고를 작성해야했다. 뜬눈으로 원고하면 다음날 피로가 쌓이고 그 상태로 작업하면 또 피로가 누적된다. 그 악순환에 또 빠질 수는 없었다. 반갑지 않은 손님을 축객하고 문을 닫으려하자 문틈으로 성큼 발이 들어왔다. 문을 닫을 수 없게 남자의 운동화가 현관에 침범했다. 겉으로는 티 나지 않았지만 김독자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 깜짝이야! 뭔데?! 그러더니 남자가 손가락으로 문을 잡았다.


“혼자 사나?”

“호, 혼자 살면 뭐 어쩔 건데요?”


남자가 문에 가깝게 섰다. 문틈으로 보이는 눈매가 매서웠다. 그는 김독자의 어깨 너머를 훑었다. 그걸 김독자가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당신 뭐야!”

“정말 혼자 사나?”

“꺼져!”


문고리를 잡고 잡아당겨도 문은 꿈쩍도 안했다. 얼마나 힘이 센 건지. 김독자가 아무리 약골이라지만 몸무게를 실어 당기는데 꿈쩍도 안하는 건 너무했다. 남자는 서늘한 눈빛으로 김독자를 내려 보다가 혀를 차고 손가락과 발을 뺐다. 문이 큰소리를 내며 닫혔다. 너무 세게 닫혀서 도어락이 고장 나는 줄 알았다. 조용히 있던 도어락은 삐빅 삑 소리를 내곤 문을 잠갔다. 김독자는 진이 빠져 그대로 주저앉았다.

대체 뭐야 저 사람? 김독자는 바닥을 기어 문에 귀를 가져다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1분 정도 지났을까? 그러다가 발걸음 소리가 났다. 오른쪽으로 걸어가는 모양이다. 오른쪽이라면 옆집, 1201호였다.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옆집에도 떡을 나눠주는 모양이다. 떡……. 시루떡은 아직 따뜻했고 덕분에 잠은 홀라당 깨버렸다.

김독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면서 식탁 앞에 앉았다. 리모콘으로 텔레비전을 켜고 먹다 남은 식빵 봉지를 열어 빵을 꺼냈다. 아무 쇼핑몰에서 구매한 빵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고소하고 짭짤한 향이 코끝을 스치자 조금 식욕이 돌았다. 한 개를 입에 쑤셔 넣고 텔레비전을 쳐다봤다.


‘S시 연쇄살인 용의자가 검거 도중에 도주했습니다. 어제 밤 9시 25분, 품속에 숨겨둔 칼로 형사를 찌르고 달아났으며 추가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용의자가 G시로 도주한 것으로 추정하며…….’


G시라면 여기 도시잖아. 그와 동시에 김독자는 방금 만났던 남자를 떠올렸다. 가슴이 선뜩했다. 설마, 그럴 리가. 김독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억측이었다. 상대방이 무례했다고 해도 함부로 살인마로 모는 건 옳지 않다. 그러면서도 김독자는 채널을 돌리지 못했다. 혹시 몽타주 같은 거라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건 없었고 앵커는 담담하게 다음 뉴스를 알렸다.


‘다음 뉴스입니다. 유성 그룹의 주가가 하락하여…….’


아니, 얼굴을 알려줘야 피하지. 김독자는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식욕도 잠도 전부 달아나버리니 한숨만 나왔다. 이 상태로는 원고도 못할 것이다. 분명 하다가 손에 안 잡혀서 때려치울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시간은 김독자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억지로라도 책상 앞에 앉아야했다.


*   *   *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얼마나 두드렸을까. 집중이 안 될 거라 생각한 것과 다르게 밥도 안 먹고 오후 5시까지 달렸다. 아무리 그래도 밥은 먹었어야 했는데. 배달을 시킬지 밖으로 나갈지 고민하던 끝에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비가 내리긴 해도 편의점 산책 정도는 나쁘지 않다. 냉장고가 텅 비었으니 채워야한다. 우산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왔을 때 건너편 복도에 세 사람이 서있었다. 그 중 가장 키가 큰 남자는 김독자를 흘끗 바라보곤 3호로 들어가 버렸다. 밖에 남아있는 두 사람은 1204호에 사는 이지혜와 1205호에 사는 이길영이었다. 각각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인데 둘 모두 하교해서 집에 있던 모양이다. 그런데 왜 3호 남자랑 있었던 걸까.


“안녕히 주무셨어요?”

“나 안 잤는데.”

“헐? 아저씨가 이때까지 안 잤다고요?”

“형, 마감이 그렇게 급했어요?”

“왜 그러냐……. 내가 안 잤을 수도 있지…….”


세 사람은 5년째 이웃사촌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웃사촌이 어디 있나 싶지만 12층에 사는 셋은 꽤나 친밀하게 지내왔다. 두 아이들은 밤낮이 바뀐 소설가 김독자를 너무나 잘 알았고 타인에게 김독자의 신상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너희 아까 그 사람이랑 알아?”

“아, 옆집 사람이요?”

“그 사람이 형에 대해서 묻던데요?”

“뭐?”


생각지도 못한 일에 김독자는 화들짝 놀랐다. 왜 자신의 뒤를 캐묻는가? 등골이 오싹해졌다.


“뭐, 뭘 물었는데?”

“그냥 혼자 사냐, 여기서 얼마나 오래 살았냐, 직업이 뭐냐?”

“그거 말고 또 있잖아. 평소에 밖에 얼마나 돌아다니나, 가족은 있나, 또 뭐더라?”

“……그런 걸 왜 물어봐?”

“저희야 모르죠.”

“형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에요?”

“에이, 그건 아니다. 그 사람은 엄청 잘생겼잖아.”

“독자 형도 잘생겼잖아.”

“근데 흐느적거리는 오징어 같잖아.”

“그건 그렇지만.”


길영아 거기에서 수긍하면 안 되지. 이지혜는 왜 그러는 거야. 김독자는 입술을 깨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내 얘기 많이 했어?”

“네, 다 했는데요.”

“누나가 다 불었어요.”

“아니, 왜?!”


골치가 아팠다. 얘는 왜 모르는 사람한테 내 얘기를 한 거야? 입이 가벼운 애도 아닌데? 이유를 물어보니 그게 또 가관이었다.


“잘생겼잖아요.”

“잘생겼다고 다 봐주면 법이 왜 있어!”

“왜 갑자기 법이랑 친한 척 해요?!”


실없는 실랑이를 주고받다가 김독자는 한숨을 쉬었다. 편의점에 갈 마음도 사라졌다. 괜히 소름끼쳐 나가는 게 두려웠다.


“아무튼 그 사람이 또 나에 대해 물어보면 그냥 모른다고 해.”

“근데 누나가 이미 다 말했는데.”

“그냥 모른다고 해…….”


김독자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자 이지혜는 곤혹스러웠다. 서로 장난스럽게 치고받기는 했지만 그의 반응에 덜컥 걱정이 들었다.


“혹시 제가 곤란하게 했나요?”

“아냐, 그런 거 아냐.”


허무맹랑한 망상 때문에 애들에게 근심을 떠안길 이유는 없었다. 김독자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무얼 먹으면 좋을지. 없는 살림, 빈약한 주방을 뒤져보니 라면 한 개 정도는 튀어나왔다.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했다. 비 때문에 배달시키기도 좀 그랬다. 김독자는 체념한 채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렸다.


*   *   *


<토요일>


똑똑똑, 또옥또옥또옥, 똑똑똑.


오늘도 비가 왔다. 수면 패턴이 망가졌는지 오늘도 아침에 일어났다. 김독자는 몸을 일으켜 배를 쓸었다. 저녁에 라면을 먹어 그런지 속이 안 좋았다. 부드러운 걸 먹어야겠는데 편의점에 가서 죽이라도 사와야 하지 않을까. 김독자는 침대에서 벗어나 냉장고 앞으로 걸어갔다. 냉장고 포켓을 열고 물을 꺼내 물병 주둥이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물병을 안에 넣다가 안쪽에 있는 정체모를 페트병을 발견했다.


이런 게 있었나? 이게 뭐지?


김독자는 별 생각 없이 페트병 뚜껑을 돌렸다. 돌리자마자 뚜껑을 잡고 있던 손이 밀려났고 깜짝 놀라 페트병을 놓쳤다.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액체가 여기저기 흩뿌려졌다. 천장도 냉장고도 바닥도 붉게 물들어 끔찍한 광경을 만들었다. 갑자기 찾아온 재앙이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왜? 왜 냉장고에서 이런 게 나왔지? 냄새를 맡아보니 붉은 과실을 발효시킨 무언가 같았다. 포켓을 자세히 보니 작은 포스트잇이 오그라들어있었다.


내 아들 김독자 보아라.

요즘도 밥을 잘 안 먹는 듯하구나.

잠시 들렀다가 잘 사는지 보려고 냉장고 좀 채웠다.

아마 너는 내가 왔다 갔는지도 모르겠지.

자기가 샀는지 남이 사뒀는지도 모르고 먹고 글만 쓰겠구나.

그래도 봤다면 연락해라.

안하겠지만.

건강에 좋다고 해서 복분자 엑기스를 두고 간다.

글 쓸 때마다 꼬박꼬박 마시려무나.

만약 안 마신다면…….

뭐, 네 업보가 되겠지.

그럼 잘 지내라.


……. 푹 발효되어서 알코올 냄새까지 내는 지뢰를 설치해둔 사람은 바로 김독자의 모친이었다. 평소 냉장고 정리를 안 하는 김독자의 업보였다.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복분자 엑기스를 가져다놓은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단순하게 아들을 골탕 먹이고 싶었던 건가? 김독자는 집안에 있는 수건과 휴지를 총동원해서 처참한 복분자 잔해를 닦아냈다. 수건과 화장지가 온통 붉게 물들고 옷에도 물이 묻었다. 이걸 언제 다 지우나 고민하던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열심히 닦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리고 난리다. 김독자는 무시하고 걸레질에 집중했다. 적당히 무시하면 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누군지 모를 손님은 집요하게 초인종을 눌렀다.


“아오!”


김독자는 걸레를 내던지고 현관으로 향했다. 발바닥이 바닥에 붙어 끈적거리는 소리를 냈다. 찝찝함이 가시질 않았다. 김독자는 거칠게 문을 열었다. 대체 누가 또 아침부터. 상대방의 얼굴을 보자마자 김독자는 굳어버렸다. 그 남자였다. 새로 이사 온 이상한 남자. 어제와 똑같았다.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왜 자꾸 자신을 찾아오는 걸까. 김독자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뭡니까?”

“그건 뭐지?”

“응?”


김독자는 잠시 잊고 있었던 차림새를 떠올렸다. 잠옷 대용으로 쓰는 하얀 면티에는 선명한 붉은색으로 물들어있었다. 그뿐이면 다행이었다. 팔다리는 물론 얼굴에도 피가 튄 것처럼 엉망이었다. 김독자는 다급하게 턱에 묻은 액체를 손등과 손바닥으로 닦았다 그러나 더 기괴해졌다.


“그, 신경 끄십쇼.”


그의 미간이 더더욱 깊게 파였다. 안 그래도 위협적이었는데 더욱 험상궂게 변했다. 김독자가 주춤거리면서 집안으로 도망치려고 하자 남자가 멱살을 낚아챘다.


“컥!”

“무슨 짓을 한 거지?”

“크흑, 이, 이거 놓고!”


어찌나 힘이 센지 발이 살짝 들렸다. 김독자는 남자의 손등을 긁어대고 그의 정강이를 차댔다. 그러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끈적거리는 과즙이 남자의 손등에도 묻어났다. 그는 고개를 숙여 김독자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짧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억센 손 안에 쥐어진 옷 냄새를 맡더니 손을 놓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정말…….”


안 그래도 목이 늘어진 셔츠였지만 더는 입을 수 없게 되었다. 가슴까지 늘어져 맨살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김독자는 옷을 그러모아 가슴을 가렸다. 멀쩡한 잠옷이 걸레가 된 순간이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복분자가 터져서……가 아니고 당신이야말로 무슨 짓이야!”

“미안하군.”


사과를 받았지만 사과를 받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는 죽어도 사과하기 싫다는 얼굴로 미안하다 말했기 때문이다. 뭔가 더 대거리하고 싶었지만 그만뒀다.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를 무시하고 문을 닫자 남자가 현관문을 붙잡았다.


“미안하니 청소를 도와주지.”


문뜩 남자를 집안에 들여서는 안 된다는 예감이 들었다. 자꾸 자신을 캐묻는 것도 이상하고 찾아온 이유도 모르겠고.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기어들어왔다.


“괜찮거든요? 필요 없어요!”


괜찮다는 말에도 남자는 꼼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을 열려고 손에 힘을 주었다. 어제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김독자는 공포에 질려 문을 세게 잡아당겼다. 그 때문에 남자의 손이 문틈에 끼었다.


“크윽!”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손을 뺀 틈을 타 잽싸게 문을 닫고 손잡이에 달린 잠금장치를 돌렸다. 삐비빅. 바로 도어락이 잠겼다. 김독자는 문에 기대어 귀를 기울였다. 남자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고 걸음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걸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김독자는 자신이 숨을 참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식은땀이 났다. 점점 남자가 의심스러웠다. 저거, 저거저거, 저 사람. 뉴스에 나온 그 살인마가 아닐까? 오소소 돋는 소름에 김독자는 현관에 주저앉아 손톱을 깨물었다. 신고, 신고해야하나? 발뺌하면 어떡하지? 그것보다 건너편에 사는 지혜네랑 길영이네는 괜찮은 건가?

김독자는 고개를 들어 집을 쳐다봤다. 살인현장이라도 된 것처럼 복분자가 흥건했다. 티셔츠에 묻은 복분자가 마치 자신의 피 같았다.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김독자는 옷을 벗었다. 빨리 이 현장을 치워야 마음이라도 놓일 것 같았다. 걸레가 된 옷으로 바닥을 닦고 여러 번 마른 수건으로 거듭한 뒤에야 붉은 물들을 닦을 수 있었다.

욕조에 수건들을 넣고 발로 밟으니 핏물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공기가 습해서 계속 땀이 났다. 샤워기 소리가 빗소리 같았다. 코를 찌르는 알코올 향을 맡으며 김독자는 수건을 밟았다. 김독자는 발가락 끝에 점점 붉은 물이 드는 것도 모르고 발을 놀려 반복했다.


*   *   *


<일요일>


똑똑똑


김독자는 잠에서 깨어났다. 오늘도 비가 내리나?


또옥또옥또옥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소리는 침착했다. 어쩐지 다급했고 간절했다. 김독자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빗소리가 아니었다. 밖은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 소리는 금요일부터 계속 들렸던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목요일일 수도 있었다. 빗소리치고 규칙적이었다. 김독자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똑똑똑, 또옥또옥또옥, 똑똑똑.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였다. 그러나 자신의 집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베란다 쪽으로 가니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아마 옆집, 1201호에서 들리는 소리일 것이다. 그때 전등이 깜빡거렸다. 파르르 떨리는 시야에 김독자는 조용히 전등을 주시했다.

김독자는 전문적으로 잘하는 분야가 없었다. 넓고 얕은 지식을 갖고 있었고 그것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됐지 악영향을 주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어렵지만 눈치 채면 알 수 있는 부호, 보편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암호, 누구나 외울 수 있는 쉬운 신호.


똑똑똑

· · ·

또옥또옥또옥

- - -

똑똑똑

· · ·


누군가 모스부호로 SOS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   *   *


귀를 기울이니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다급한 목소리였지만 숨을 죽여 속삭이고 있었다. 김독자는 베란다에 기대어 말을 건네었다.


“거기 누구 있어요?”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 않아 목소리가 잠겼다. 그럼에도 벽 너머에서 벅찬 기쁨이 느껴졌다.


“도, 도와주세요. 납치당했어요.”

“뭐?”


SOS 신호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침전물처럼 가라앉아있던 졸음이 한순간에 달아났다. 옆집, 1201호 사람을 생각하며 김독자는 얼굴을 구겼다. 역시 사람은 겉만봐선 모른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친절한 이웃으로 보이던 그 남자가 납치범? 한쪽은 납치범, 한쪽은 연쇄살인마(추정). 아파트 돌아가는 꼬라지가 대단하다.


“지금 집안에 그 사람 있니?”

“아침마다 밖으로 나가서 지금은 없어요.”


김독자는 평소에 1호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독자와 생활패턴이 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김독자가 아침에 깨는 경우는 드물었다. 어떻게 해야 아이를 안전하게 구할 수 있을까? 김독자는 고민에 빠졌다.


“현관문 열 수 있어?”

“현관으로 가는 곳에 나무랑 유리로 된 문이 있는데 그 사람이 나가면서 잠그고 가요.”


안쪽에서 열어주는 건 불가능했다. 김독자는 혀를 차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일단 신고가 급했다. 1, 1, 2. 번호를 누르고 통화하려던 그때 아이가 입을 열었다.


“제가 그쪽으로 넘어가게 도와주세요.”

“뭐?”

“베란다로 넘어 갈게요.”


어이없는 말에 신고를 하려다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베란다를 통해 여기로 넘어 오겠다고? 김독자의 집은 12층이다. 12층에서 공중묘기를 보이겠다고? 김독자는 아이가 미친 게 아닌지 의심했다.


“미쳤어? 안 돼. 이건 소설도 영화도 아니야. 떨어지면 죽어.”

“흐윽, 그, 그 남자가 나가고 시간이 오래 지났어요. 곧 들어올 거예요. 오늘이 거래일이랬어요. 돈을 받든 안 받든 저를 죽이고 도망친댔어요. 무서워요. 너무 무서워요.”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옆집 남자 완전 미친 놈 아니야? 김독자는 주변을 둘러봤다. 끈 같은 게 필요했다. 아이가 떨어지지 않게 만들어줄 안전장치 같은 게 필요했다. 이불? 아이가 잡기엔 너무 무거워. 벨트? 잡기가 불편해. 바지끈? 미친 짓이다.

방을 이잡듯 뒤진 끝에 김독자는 먼지가 다닥다닥 붙은 고무 밴드를 발견했다. 한수영이 운동 좀 하라고 던지고 간 운동용 고무 밴드였다. 생일선물 대신이라면서 단계별로 네 개 정도 주고 갔었다. 개똥도 쓰려면 쓸 데가 있다더니, 한수영도 쓸모가 있다. 김독자는 밴드 두 개를 새끼줄 꼬듯 엮었다. 다른 두 개도 똑같이 꼬아 밧줄을 만들었고 집에 있던 플라스틱 컵 손잡이에 끈들을 묶은 채 베란다로 향했다. 밧줄 중 하나를 베란다 안전봉에 묶고 아이에게 말했다.


“밧줄 던질 테니까, 끝에 단 컵은 버려. 둘 중 하나는 이쪽에 묶었으니까 거기 있는 안전봉에 단단히 묶어. 나머지 하나는 손목에 감아. 절대 놓지 말고. 나도 절대 놓지 않을 테니까 조심히 건너와.”


여러 번 던진 끝에 아이가 컵을 잡았는지 끝이 묵직해졌다. 무거운 것이 드르륵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발판을 준비한 건가? 잠시 뒤 아이가 줄을 당겼다.


“주, 준비됐어요.”


아이가 스스로 제안한 일이지만 위험천만했다. 김독자는 손목에 줄을 감았다. 아이가 발을 헛디디더라도 떨어지지 않게 반드시 잡아낼 것이다.


“아래는 보지 말고, 다리에 힘주고. 힘이 풀릴 거 같으면 말해야 해. 알겠지?”

“네.”


쇳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봉을 밟아 밖으로 넘어갔다. 김독자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아이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울음을 꾹 참고 베란다 봉을 잡고 있었고 손목에 알록달록한 고무 밴드를 감아쥐고 있었다.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지만 다리에 힘을 주려 입술을 앙 다물었다. 고무 밴드 하나는 1호와 2호를 잇고 있었고 하나는 김독자와 아이를 잇고 있었다. 아이가 가볍고 베란다끼리의 사이가 제법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매달려있는 아이에게는 전혀 아닐 것이다. 김독자는 아이의 긴장을 풀어주려 말을 걸었다.


“이어진 줄에 매달려서 벽에 발을 올리고. 응, 그렇지. 할 수 있어. 못해도 괜찮아. 내가 잡고 있어. 응.”


아이는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였다. 근육 발달도 덜 된 어린 애에게 이런 짓을 시키다니. 아이가 하겠다고 나선 거지만 자신은 정말 쓰레기다. 김독자는 입 안 여린 살을 꾹 깨물고 아이가 조금씩 오는 걸 기다렸다. 반 정도 왔을 때 아이가 화들짝 놀랐다. 옆집에서 도어락 소리가 들렸다.


“나, 나나 납치범이에요!”

“괜찮아! 당황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고. 조금씩 움직여. 괜찮아. 내가 잡고 있어…….”


김독자는 애써 불안을 숨겼다. 자신이 긴장하면 아이도 불안해한다. 아이가 초조해하지 않도록 안심시켰다.

옆집 문이 닫히는 소리가 크게 났다. 아마 현관에 있겠지. 베란다 너머에서 옆집 남자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뭐야.”


아이는 보이지 않고 베란다 문이 활짝 열려 있으니 혼란스러울 만도 하다. 잠깐 시간이 걸린다 싶더니 발걸음이 쿵쿵쿵 다가왔다. 아이의 발이 빨라졌고 아이의 발이 한 번 미끄러졌다. 김독자는 빠르게 손을 뻗어 아이의 팔을 잡아챘다. 우악스러운 손길이었지만 급한 마음에 어쩔 수 없었다. 김독자가 아이를 잡아채자마자 건너편에서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1201호 남자가 맞았다. 자주 대화한 사이는 아니지만 나쁜 사람이라 생각은 안했는데, 그의 눈이 아귀 같이 느껴졌다.


“씨발, 너 뭐야.”


김독자는 아이를 집안으로 들이고 품에 껴안았다.


“그러는 넌 뭐야!”


남자가 말없이 묶여있는 고무 밴드를 보고 있었다. 김독자는 준비해둔 가위로 빠르게 밴드를 잘랐다. 납치범은 그걸 보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키득키득 웃고 안으로 들어갔다.


“도망쳐야 해요.”

“뭐? 아냐. 경찰에 신고하고 여기서 버티고 기다리면…….”

“저 남자, 열쇠 딸 줄 알아요!”


그 말을 듣자마자 김독자는 아이와 함께 밖으로 뛰쳐나갔다. 문을 박차고 나가자마자 옆집 문이 열리는 소리와 공구통이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독자는 뒤도 보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로? 아니면 계단? 엘리베이터로 가다가 만약 납치범이 먼저 도착하면? 김독자는 계단을 선택하고 아이를 고쳐 안았다.

젠장, 젠장. 어쩌다가? 왜? 젠장! 평화로운 나날이 갑자기 탈바꿈하더니 장르를 스릴러로 바꿨다. 물론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김독자는 아이를 구했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두려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헉, 허억, 헉.”


미리 신고라도 해둘 걸, 도움이라도 청할 걸. 그러나 그러기에는 상황이 급작스러웠다. 계단을 두 칸씩 내려갔다. 벽에 부딪치면서 몸을 가눴다. 이름도 모를 아이를 구하기 위해 계단을 뛰어다니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붕 뜬 현실감각, 아이에게 그렇게 당부했던 말을 김독자는 지키지 못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몸이 공중에 뜬 것이다. 김독자는 아이를 품에 안고 몸을 웅크렸다. 돌바닥에 등부터 부딪쳐 가슴 속에 고통이 들끓었다. 김독자는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았다. 미적거릴 틈이 없다. 위에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김독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   *


남자와 이길영 사이에 어색함이 가득 찼다. 편의점에서 비싼 아이스크림을 골라 아이 손에 쥐어준 남자는 아이에게 편의점 문을 열어줬다. 공짜 아이스크림에 신난 아이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거 사준다고 독자 형에 대해 다 말할 건 아니니까 그렇게 알아두세요.”

“…….”


남자는 말없이 걸었다. 아이의 보폭에 맞춰 걷다보니 걸음은 한없이 늘어졌다. 그러나 남자는 그 보폭에 익숙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겐 소년 또래인 동생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깨물며 입을 우물거렸다.


“독자 형은 혼자 살아요. 가끔 형 엄마가 오시는데 진짜 가끔이라 얼굴도 세 번 봤나? 가끔이긴 한데 아줌마보다는 수영 누나 자주 오고……. 독자 형이 여기서 몇 년 살았는지는 모르겠어요. 독자 형이 있었고 그 다음 우리 집이 이사 오고 다음에 지혜누나 네가 왔어요. 그렇게 세 집이 5년 됐나? 1호 아저씨는 최근에 이사 왔는데 6개월 된 거 같아요.”

“…….”


1호와 2호. 유중혁은 직감적으로 1호에 사는 남자를 주목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2호 남자가 신경 쓰였다. 건방진 눈빛, 엉거주춤한 태도, 자신을 꺼리는 모습. ……정말로?

유중혁이 고민하는 동안 빗방울이 떨어졌다. 날이 흐리더니 결국 비가 내린다. 유중혁은 가죽 재킷을 벗어 이길영에게 씌워줬다. 그는 동생 또래 아이들만 보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동생처럼 대해주곤 했다. 아이가 감기에 걸리지 않게 걸음을 재촉했다. 아파트로 들어간 아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유중혁은 머리와 어깨에 묻은 빗물을 털어내며 아이가 건네는 재킷을 받아들었다.

띵, 동.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어, 뭐지?”


이길영도 그걸 들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들린 건 아니었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자 계단 쪽에서 누군가 뛰어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에 유중혁은 계단을 경계했다. 아이를 뒤로 보내고 계단 쪽을 노려봤다. 반 층마다 내려오는 속도, 박자, 3, 2, 1. 모습을 드러낸 자는 1202호 사람, 김독자였다.


“어, 독자 형!”

“헉, 헉, 길영아?”

“형, 걔는 누구예요?”


그는 이길영 또래 여자 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와 아이의 손목은 운동용 고무 밴드로 이어져있었고 두 사람 모두 지쳐 보였다. 여자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가슴이 내려앉았다. 정말, 저 놈이었나? 유중혁은 이를 악물고 김독자에게 손을 뻗었다.


“살려, 살려주세요!”


그 말이 늦었다면 유중혁은 이미 김독자를 바닥에 메쳤을 것이다. 그가 주춤한 사이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하나 더 늘었다. 회색 바탕에 붉은 무늬가 들어간 운동화가 보이고 소리를 낸 당사자가 나타났다. 1201호에 사는 남자였다.


*   *   *


김독자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1호 남자와 3호 남자 사이에 껴서 이도 저도 못하고 품에는 여자 아이, 3호 남자 뒤에는 길영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납치범이 가까이 오려하니 품에 안긴 아이가 경기를 일으켰다.


“아하, 제 조카인데 애가 좀 짓궂어서요. 머리도 이상하고. 병원에 가야할 거 같은데 돌려주실래요?”


능숙하게 말을 꾸미고 태연하기까지, 순간 혹할 뻔했지만 김독자는 고개를 저었다. 목숨을 걸고 장난을 칠 사람은 없다. 사람이 목숨을 걸 일은 흔치 않다. 목숨을 위협받는 게 아니라면 그 누가 벼랑을 건너려 들겠는가. 아이를 단단히 안고 뒷걸음질을 치자 등에 누군가 닿았다. 1203호 남자였다.


“정말 당신 조카입니까?”

“네, 저희 누나가 출장을 가서 잠시 제가 맡아주고 있는데 워낙 장난꾸러기라서 말이죠.”

“…….”


안 된다. 저 남자가 납치범에게 설득되면 상황이 이상해진다. 그가 김독자를 납치범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 아이가 점점 떨었다. 추운 날씨도 아닌데. 습기만 가득한 날씨인데. 김독자도 점점 몸이 떨렸다. 김독자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물고 입을 열었다.


“거짓말하지 마.”


그리고 직구를 던졌다.


“당신 이 여자앨 납치한 거잖아.”

“네에에?”


그러나 정석대로 던진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능청스럽게도 납치범은 계속 자신이 아이의 가족이라 주장했다.


“허, 아니 참. 걔한테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모르겠는데요. 애가 소위 말하는 정신병자거든요. 망상증 같은 거요. 빨리 돌려줘요. 내가 당신을 납치범으로 신고하기 전에.”


제 삼자 입장에서는 설득력 있게 들릴 것이다. 김독자는 상황 모면을 위해 다시 한 번 달려야하나 고민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체력으로는 얼마 못가 잡힐 것 같았다. 벼랑 끝에 몰린 가운데 누군가 김독자의 손을 붙잡았다.


“독자 형은 거짓말 안하는데요.”


이길영이 유중혁의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가끔 욕은 하는데 거짓말은 안하거든요. 그리고 아저씨가 납치범이 아니면 쟤가 왜 저렇게 떨어요?”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납치범을 쏘아붙였다. 웃고 있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지적이 폭탄 심지에 불을 댕겼는지 남자의 공구통이 열렸다. 공구통이 바닥에 떨어지고 드라이버나 가위, 못과 망치가 우수수 바닥에 쏟아졌다.

남자가 손에 쥔 꼬리톱이 눈에 들어왔다. 상어 이빨처럼 톱날이 거칠고 뾰족했다. 김독자는 공황 상태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그대로…….

그 때 검은 워커가 톱날을 차서 떨어뜨렸다. 워커, 워커? 이 더운 여름에 목이 긴 가죽 워커? 김독자는 3호 남자가 자신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은 걸 깨달았다. 그 팔은 안정적이고 믿음직스러웠다. 이렇게 억센 팔인데도 왜 안심이 되는 건지……. 김독자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만난 날부터 생각했지만 정말, 정말…….


“쓸데없이 잘생겼네…….”


김독자는 그렇게 기절했다.


*   *   *


눈을 뜨자마자,


“일어났나?”

“으악! 으아악!”


김독자는 비명을 질렀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등이 욱씬거리는 고통에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유중혁은 끙끙거리는 김독자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등은 타박상, 발목은 인대파열이다. 그만해서 다행이군.”

“당신! 대체 누구야!”

“나는 유중혁이다.”


그걸 물은 게 아니었다. 갑자기 기운이 쭉 빠졌다. 독실로 보이는 병실에는 김독자와 유중혁뿐이었고 텔레비전 속 뉴스 앵커만 조잘조잘 떠들고 있었다.


‘오늘 오전 10시 44분, G시 아파트 단지에서 초등학생 납치 용의자가 체포되었습니다. 피해 아동은 기업가 A의 손녀딸이며 용의자는 금전을 노리고 범행을 저지른 걸로 밝혀졌습니다. 검찰 측에서는 용의자를 S시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으며 용의자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어, 어?”

“납치된 아이는 신유승. 유성 기업 회장의 손녀딸이다. 네가 구한 아이의 이름 정도는 알아둬야겠지.”

“그 애는 무사해?”

“심신안정이 필요하지만 덕분에 다친 곳 없이 멀쩡하다.”

“다행이네…….”


아이가 품속에서 덜덜 떨던 것이 아직도 생생했다.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김독자는 몸을 일으켜 앉아 유중혁을 바라봤다. 어제, 아니 아까까지만 해도 살인마일까 꺼려졌던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도움까지 받았을까.


“나는 당신이 연쇄살인마인줄 알았는데.”

“내가?”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범죄자인줄 알았다는 말에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그는 언짢은 얼굴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경찰답지 않다는 소릴 들어본 적은 있지만 살인마 같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군.”

“경찰?”

“형사과 유중혁이다.”


형사, 경찰이라고? 경찰답지 않다니, 확실히 경찰치곤 잘생겼다. 영화 속에 나오는 중년 형사의 잘생긴 후배 형사 같다. 만약 실제로 나온다면 저 얼굴로 씬스틸러가 될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니 말이다.”

“응?”

“처음 봤을 때, 네 녀석을 용의 선상에 올렸다.”

“뭐?! 나를 왜?!”


유중혁은 잠시 고민하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누가 저 남자를 경찰이라 생각하겠어. 김독자는 그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꽤나 수상해보였다.”

“어디가?!”

“집에서 잘 안 나온다는 점, 혼자 산다는 점, 그리고 복분자를 터뜨린 점. 네가 아이를 죽인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나?”

“나는 당신이 날 죽일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말로 엎치락뒤치락하며 한참을 아옹다옹하다가 김독자가 먼저 나가떨어졌다. 김독자가 침대에 도로 눕자 유중혁은 이불을 집어 몸에 덮어줬다.


“아무튼 이제 안심하고 쉬어라. 나는 이만 나가볼 테니.”


병실을 나가려던 유중혁은 옷이 어딘가에 걸린 걸 알아챘다. 뒤를 보니 누워있던 김독자가 몸을 일으켜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그, 고마워. 아무튼 날 구해줬으니까…….”

“내가 할 말이다. 덕분에 납치된 아이가 무사했으니.”


남자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미세하게 눈매가 휘어 웃는 것처럼 보였다. 김독자는 손에 힘을 주며 생각했다. 이렇게 가면 끝인가? 그래도 날 도와준 사람인데. 답례라도, 얘기라도, 뭔가 더…….

김독자가 고민하는 사이 진동 소리가 울렸다. 유중혁의 스마트폰이었다. 그는 화면을 보다가 김독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다음에 보도록 하지. 김독자.”


쥐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려 유중혁의 옷자락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김독자는 병실에 홀로 남아 유중혁이 나간 문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이상한 이웃집 남자는 그렇게 떠나갔다.


*   *   *


“댸으뭬 보도록 해쥐. 김독즈아~”


김독자는 못생긴 표정으로 유중혁이 했던 말을 따라했다. 거울에 나타난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보며 김독자는 맥없이 웃었다.


“다음은 무슨 다음이야. 끝이지.”


퇴원했던 날, 김독자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1203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공허한 벨소리만 들릴 뿐, 유중혁은 나오지 않았다. 잠입수사를 위해 빈집을 이용했을 뿐이다. 안은 가구 하나 없이 텅 빈 집이라 들었다. 따로 연락하기 위해 번호를 받은 적도 없고 유중혁에게 번호를 준 적도 없었다.

김독자는 식탁 위에 있던 컵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원고하다가 이게 웬 청승인지. 쓰던 글이나 쓰자 싶어 티백을 뜯었다.


쿵!


그 때 옆집에서 큰 소리가 났다.


“…….”


1호에서 나는 소리였다. 분명, 아무도, 없을 텐데. 잘못 들은 걸로 치부하기엔 선명하고 확실한 소리였다. 티백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현관으로 걸어 나갔다. 현관문을 슬쩍 열어보니 밖이 소란스러웠다. 김독자는 용기를 내 문밖으로 나왔다. 1201호의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설마 누가 이사를 온 건가? 잠깐이지만 범죄자가 살았던 곳인데 용케도 팔렸다.

김독자는 1201호 문 안쪽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봤다. 베란다에는 이삿짐을 옮기는 사다리가 걸려있었고 거실에는 이삿짐 상자가 널려있었다.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내부 관찰에 열중하는 사이, 갑작스럽게 머리에 뜨끈뜨끈한 게 느껴졌다. 김독자는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으하악!”


뒤를 돌아보자 검은 비닐봉지가 눈앞에 달랑거렸다. 그걸 붙잡고 있는 손에 이어 두터운 팔, 넓은 어깨, 잘생긴 얼굴이 보였다. 유중혁이었다.


“이사 떡이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이사 왔으니까.”


너무도 당연하게 말하는 유중혁 때문에 김독자는 맥이 빠졌다. 로켓도 울고 갈 미친 추진력이다. 누가 예상했겠어. 다시 보자는 게 이런 뜻이었냐고…….


“집들이 선물은 세제로 받겠다.”

“세제는 없고 복분자 터진 거 남았는데…….”

“그런 건 너나 먹어라.”

“그런 거라니, 엄마가 선물해주셨거든?”

“모친에게 선물 받은 걸 내게 주려고 한 네놈은 후레자식인가?”


유중혁은 쉽게 태세를 바꾸는 사람이 아니다. 되로 주려다가 섬으로 받은 김독자는 시루떡까지 잔뜩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짐 정리가 덜 됐으니 다음에 초대하겠다고 했다.

마침 아침을 걸렀다. 김독자는 시루떡을 뜯어 입에 넣었다. 달고 고소하며 따뜻하고 쫀득했다.

옆에서 사다리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잠입 같은 게 아니고 진짜로 이사 온 건가봐. 그제야 실감이 났다.


오전 11:23 [야 한수영]

오전 11:23 [집들이 선물로 보통 뭐 주냐?]

웬수 [?] 오전 11:24

웬수 [인터넷에 검색해] 오전 11:24

웬수 [별 걸 다 묻네] 오전 11:24

웬수 [생활용품 주면 돼] 오전 11:24

웬수 [식기나 주방용품, 샴푸, 휴지 같은 거] 오전 11:24

웬수 [근데 웬 집들이 선물?] 오전 11:24

웬수 [네가?] 오전 11:24

오전 11:25 [ㄱㅅ]

웬수 [씹냐?] 오전 11:25

오전 11:25 [ㄱㅅㄱㅅ]

웬수 [ㅅㅂ] 오전 11:25


김독자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지갑을 챙겼다. 뭘 거창하게 준비해? 세제 달랬으니까 세제 사오면 되겠지. 한수영이 알려준 건 겸사겸사 사고……. 음, 그리고 또…….

물어보면 극구 부인하겠지만 김독자는 누가 봐도 기대하고 있었다. 김독자의 좁아터진 영역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자기 집인지 남의 집인지 모를 정도로 두 사람은 서로의 문턱을 드나들게 되지만 그건 나중에 일어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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