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중혁독자] 우렁각시와 서방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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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혁독자] 우렁각시와 서방님


야간근무가 제일 싫다. 취객도 있고 미친놈도 있기 때문이다. ■■ 파출소 순경은 피곤에 찌든 눈으로 서류를 뒤적였다. 안 그래도 방금 막 미친 취객이 서에 도착했다.

“내가 누군 줄 알어?! 엉?!”

존나 모르겠다. 조금 있으면 서장님이랑 밥도 먹는 사이라고 하겠다.

“내가 여기 서장이랑 친구야 친구!”

역시나 서장님 친구란다. 그녀는 최대한 취객을 상대하지 않으려 업무에 집중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서에 들어섰다. 후광이 보인다면 이런 사람일까? 취객이 진흙덩어리라면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남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이 정성껏 빚은 도자기였다. 사람이 어쩜 저렇게 잘생겼을 수가.

“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저도 모르게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어허, 엄연히 시민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뿐이다. 사심은 없다.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

“집에 무단침입을 한 자를 잡아왔다.”

“잡아와요?”

그녀는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저 체격에 근육이라면 일반 시민이라도 범죄자를 제압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혼자 들어왔다. 혹시 차를 끌고 와서 차에 가둬놨나?

“신고하셨다면 저희가 댁까지 갔을 텐데요.”

“마음이 급해서.”

“위험할 수도 있으니 다음부터는 신고 먼저 해주세요. 그나저나 용의자는 어디에 있죠?”

저렇게 잘생긴 남자에게 일이라도 생기면 세상은 손해 보는 거다.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주먹을 쥔 손을 내밀었다. 잡아달라는 건가? 그녀가 그 손을 맞잡으려하는 순간 남자가 손을 폈다. 그 안에 무언가 있었다. 달팽이 같기도 하고 골뱅이 같기도 한 그것은 어제 점심에 봤던 것이었다.

“우렁이네요.”

“우렁이다.”

그녀는 어제 점심으로 우렁쌈밥을 먹었다. 중요한 건 쌈밥이 아니었다. 지금 상대방이 가택침입 용의자랍시고 우렁이를 내민 것이 중요했다.

“이런 건 해충박멸 회사에 연락하세요. 거기서 우렁이를 잡아줄 지는 모르겠네요.”

“그런 게 아니다.”

그는 부정하며 우렁이의 집을 손가락으로 툭툭 쳐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이봐, 일어나라. 빨리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순경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멀쩡한 남자 하나 없다더니 진짜인 모양이다. 저렇게 잘생겼는데……. 물론 그런 것까지 감안하고도 잘생겼다.

“이게 아까는 사람이었는데.”

그 얼굴이 썩 곤란해보였지만 진짜 곤란한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녀는 정색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공무집행 방해로 체포할 겁니다.”

다행히도 남자는 더 버틸 생각은 없었는지 순순히 우렁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눈요기는 됐지만 이럴 거면 차라리 취객을 상대하는 게 나았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잘생긴 미친놈이 낫다.

그녀는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는 취객을 보다가 다시 서류에 코를 박았다. 역시 야근이 제일 싫다. 내일 점심은 뭐 먹지. 벌써부터 내일 먹을 음식을 고르는 건 우스웠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렁이를 봤더니 어제 먹은 우렁쌈밥이 또 떠올랐다. 아무래도 내일은 우렁쌈밥 한 번 더 먹으러 가야겠다.


집으로 돌아온 유중혁은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갔다. 현관을 밟는 발소리가 평소보다 컸다. 그는 분을 참지 못하고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심호흡했다. 솔직히 바깥에 버리고 올까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러나 아직 바깥은 추웠다. 주머니 속 우렁이를 꺼내 식탁 위에 대충 올려뒀다. 그러자 우렁이가 점점 커지더니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다. 

“헤헤.”

하얀 속살을 전부 드러낸 우렁이는 벌거벗은 채 나타났다. 유중혁은 환장할 노릇이었다. 경찰은 무섭고 나는 안 무섭나?

“내 집에서 당장 나가라.”

“에이, 중혁아. 한 번만 봐주자. 응?”

뻔뻔하게도 남 얘기인 것처럼 군다. 유중혁은 이 빌어먹을 우렁이가 나타난 그 날을 기억한다.


비 오는 날이었다. 그 날은 동생이 놀러오는 날이었다. 유중혁은 집에서 독립했고 주마다 한 번씩 동생인 유미아가 들르곤 했다. 유중혁은 동생을 위해 갖은 간식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자 유중혁은 의자에서 일어서 동생을 맞이했다. 유미아는 노란 우산을 접지도 않고 무언가를 들이밀며 자랑했다.

“이게 뭐냐.”

“달팽이.”

“…….”

유미아가 달팽이를 잡아왔다며 보여준 것은 우렁이였다. 도심 한복판에 우렁이? 달팽이였다면 납득할 수 있었겠지만 우렁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급한 대로 플라스틱 대야에 넣어뒀다.

“대체 저런 건 어디서 주워온 거냐.”

“몰라, 길 한복판에 있었어.”

손을 씻고 돌아온 유미아는 잽싸게 식탁 앞에 앉아 케이크 위의 딸기를 탐내었다. 길 한복판이라면 누군가 저녁 찬거리로 구매한 우렁이가 비닐봉지를 탈출한 것이리라. 유중혁은 우렁이에 대한 관심을 끊고 동생의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닦아냈다. 유미아가 돌아갈 때 우렁이를 챙겨갈 거라 생각했지만 아이는 간식만 챙겨서 귀가했다.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유중혁이 부랴부랴 대야를 살펴봤지만 우렁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낭패였다. 바 선생, 혹은 돈 선생을 목격하고 놓친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언제 어디서 찌부러들어 죽어버린 우렁이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화장실이고 침실이고 싹싹 뒤졌지만 우렁이는 보이질 않았다. 결국 유중혁은 포기하고 하룻밤을 보냈다. 우렁이 하나 들였다고 무슨 일이야 있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난 유중혁은 후회했다. 난장판이 된 주방을 보며 유중혁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이 참담한 상황이 꿈은 아닌 듯했다. 놀랍게도 현실이었다. 도둑이 들었나? 보통 도둑은 주방보다는 방을 뒤지지 않나? 유중혁은 천천히 방을 둘러보았다. 없어진 물건은 없다. 몽유병에 들렸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꿈속에서도 주방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는 확신했다. 집에 무언가 있다. 그렇게 몇날며칠을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싸우며 보냈다. 결국 유중혁은 자신의 집에 CCTV를 설치하는 기행을 벌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주방은 난장판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유중혁은 CCTV를 돌려봤다. 걸리기만 해봐라. 작살을 내버리겠다. 그는 충혈된 눈으로 주방을 주시했다. 주방은 깜깜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을까. 여전히 인기척은 없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유중혁은 멋쩍은 기분이 들어 스마트폰을 끄려했다. 그때 바깥에서 부스럭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유중혁은 숨을 죽이고 화면을 엿봤다. 검은 무언가가 꾸물럭거리더니 점점 자라났다. 점점 사람 형상으로 변한 그것은 가장 먼저 냉장고로 다가갔다. 꺾였던 의욕이 퐁퐁 샘솟았다. 유중혁은 문을 박차고 나가 인영을 덮쳤다.

“으악!”

“넌 뒤졌어.”

벌거벗은 살갗이 손아래로 느껴졌다. 남의 집에서 벌거벗고 주방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변태라니. 그렇게 정체모를 남자를 잡아다가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로 가던 도중에 갑자기 우렁이로 변해서 어이가 없었지만 그런다고 유중혁의 분노는 막을 수 없었다. 그대로 우렁이를 신고하려고 했지만 경찰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결국 유중혁의 분노는 오갈 데를 잃었다. 그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인상이 흐린 남자를 보며 질색했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거지?”

“식탁 위에 공과금 지로통지서 있던데?”

“그걸 네가 왜?”

“식탁 위에 있으니까?”

유중혁은 한숨을 쉬고 새 속옷과 추리닝을 우렁인간에게 던졌다. 그는 주섬주섬 옷을 주워입었다. 유중혁보다 체구가 작아서인지 옷이 헐렁거렸다.

“네놈은 사람이냐 우렁이냐.”

“뭐같아?”

“…….”

“……알았으니까 그렇게 보진 마라…….”

우렁인간은 쭈뼛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너 우렁각시 알아?”

“…….”

“아, 알지?”

“그게 너라고?”

“조금 다르지만 그거야!”

“…….”

유중혁은 할말을 잃었다. 우렁각시라 하면 일을 나간 인간 남자를 대신해 우렁이가 집안 가사일을 도맡았다는 전래동화 아닌가. 그런데 이녀석은 치우기는커녕 어지럽히기만 했다.

“어지럽히는 게 네 일인가?”

“내가 좀 실력이 없긴 하지. 그래도 빠는 건 잘해.”

“…….”

“빨래는 잘한다고. 왜 그렇게 바라봐?”

씨익 웃는 모습이 재수 없었다. 유중혁은 우렁이의 모습이 언짢았다.

“최악이군.”

“무슨 생각한 거야? 응? 무슨 생각했어?”

말로 쿡쿡 찌르는 얄미운 모습에 참을만큼 참았다. 유중혁은 우렁이의 목에 팔을 둘러 손가락 관절로 쥐어박았다. 비비듯이 돌려 쥐어박느라 우렁이의 비명소리가 한참 이어졌다.


“그래서 우렁각시가 여기는 웬일이냐.”

“우움?”

우렁인간은 자신을 김독자라고 소개했다. 전래동화만큼이나 촌스러운 이름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김독자가 배고프다고 하는 바람에 유중혁은 늦은 저녁식사를 차렸다. 곤경을 피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배가 고팠는지 잘도 먹어치운다. 빠르게 우물거리던 김독자는 꿀꺽 삼키고 말했다.

“네 동생이 데려왔잖아.”

“이런 걸 왜 주워와서…….”

“긍정적으로 생각해.”

“네 놈을 당장 쫓아내지 않은 걸로 충분히 긍정적이다.”

김독자는 눈치를 보며 소시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뽀드득거리는 소시지를 허니 머스타드 소스에 찍어 입에 넣었다.

“내가 일을 좀 쳤거든.”

“일?”

“책 한 권을 작살냈다고 벌 받는 거야.”

“귀한 책이었나보군.”

“어, 옥황상제가 아끼는 설화집이었거든.”

옥황상제라니. 허무맹랑한 소리지만 유중혁은 반쯤 포기한 채로 김독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헛소리에 대꾸까지 할 정도로 손을 놓았다.

“자기가 손오공이라도 되는 줄 아나보군.”

“어, 맞아. 손오공이 내 형이야.”

“1절만 해라.”

“소실된 설화 복원하라고 벌 받는 중.”

“그게 우렁각시다?”

“우리 중혁이 말귀도 잘 알아듣네.”

설화의 원형을 기본으로 재해석하여 현실에 실체화하는 것으로 복구할 수 있다고 한다. 주구절절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유중혁은 생각했다. 그걸 왜 내게 말하고 있지? 그의 미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을 때 김독자가 눈을 찡긋거리면서 말했다.

“그래서 중혁이가 순순히 협조해주면 좋겠.”

“꺼져라.”

즉답이었다. 유중혁은 정말 싫은 얼굴로 거절했다.

“아니, 조건이라도 좀 들어.”

“싫다.”

“보통 이럴 땐 소원을.”

“필요 없다.”

“중혁아 한 번만 듣…….”

유중혁은 말없이 엄지로 등 뒤를 가리켰다. 참고로 유중혁은 현관문을 등지고 있었다. 이 밥을 두고 그냥 나갈 수는 없다. 김독자는 포기하고 소시지를 입에 넣었다.

“뭐, 안되면 어쩔 수 없지. 다른 사람을 알아보는 수밖에.”

“다른 사람?”

유중혁은 기억을 더듬어 어릴 때나 읽었던 동화 내용을 떠올렸다. 대충 한 농부가 우렁이를 주워 집에 들이곤 얼렁뚱땅 혼인을 하던 내용이었는데……. 그러니까 주운 사람이……. 주운 사람이? 유중혁이 식탁을 내리치자 접시들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유미아한테 손댔다가는 죽여 버리겠다.”

“미쳤어?!”

악을 쓰며 소리를 빽 지르는 김독자를 보면서도 유중혁은 마음이 언짢았다. 급기야 극단적인 생각이 든 것이다. 현실감 없는 사기꾼을 보며 유중혁은 유미아에게 톡을 보냈다.

“한동안 유미아를 못 오게 해야겠군.”

“엉?”

“네놈이 접근 못하도록 감시해야겠다.”

“야! 날 뭘로 보고!”

“사기꾼 및 우렁이 및 수상한 놈.”

“야!”

억울해하는 김독자를 무시한 유중혁은 소시지 접시를 빼앗았다. 김독자는 눈뜨고 코앞에서 반찬을 압수당했다. 갈비도, 동그랑땡도, 콩나물국도, 심지어 김치까지 빼앗겼다.

“협조하겠다.”

“어? 응, 협조……. 아니, 협조한다면서 왜 반찬을 뺏어?”

“우렁 각시라면서. 네놈, 밥은 할 줄 아나?”

“어…….”

“…….”

“요즘 편의점 좋더라.”

“내가 아는 우렁 각시와는 너무 다르군.”

빌어먹을 각시 놈. 편의점 밥을 먹이는 우렁 각시가 어디 있나. 유중혁은 밥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얄미운 우렁 각시를 혼쭐내주고 싶었다.

“오늘부터 알려주지.”

“뭐, 뭘?”

“우선 쌀부터 씻어라.”


그리고 한참 뒤, 유중혁은 물난리가 된 주방을 보며 새삼 깨달았다. 이 녀석은 요리에 적성이 쥐뿔도 없는 놈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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