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동화

[중혁독자] 잠들지 않는 동화 04

@Nyang_2cha님의 1863회차 중혁과 17살 김독자 -] 3차창작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jpHAQk3K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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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witter.com/Nyang_2cha/status/112316114866728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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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않는 동화

04


늘 그랬듯, 현명하게 행동해라. 신중하게 이행해라. 이성적으로 판단해라.

유중혁은 말을 아끼고 검을 휘둘렀다. 1863, 지킬 것은 없다. 많은 것을 뒤에 두고 왔다. 1863은 그런 회차였다.

그럼에도 유중혁은 익숙하게 일격을 베었다. 뒤에 누군가를 두고 검을 휘두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감각이 익숙해지면 위험할 거라고 이성이 경고했다. 그렇기 때문에 유중혁은 녀석을 두고 떠났다, 버렸다, 도망쳤다.

김독자가 위험에 빠질 것은 당연했다. 유중혁이 없으면 생존조차 불가능할 아이였다. 그런데도 그 아이가 제 안의 무언가를 바꿀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두려웠기에, 유중혁은 아이를 홀로 있게 만들었다.

그렇게 걷다가 걷다가, 유중혁은 걸음을 덜컥 멈췄다. 이름 없는 것들에게 갈기갈기 찢기고 잡아먹히는 아이를 떠올렸다. 손톱 끄트머리조차 남지 않겠지. 시체는 물론 유품조차 남기지 못해 자신이 떠올리는 기억만이 유류품으로 남을 것이다. 발밑에서 으슬으슬 올라오는 한기가 끔찍했다.


……죽어? 녀석이?


유중혁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어째서 이토록 불안할까. 동료는커녕 총알받이로도 써먹지 못할 약한 녀석을, 자신은 어쩌려고 이러는 것인가. 유중혁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혼자가 아니었다. 유중혁은 반파된 건물 옥상에 서서 김독자를 바라봤다. 하얀 코트를 입은 하얀 머리 남자, 김남운. 한때 그가 동료로 삼았던 자였다. 이름 없는 것들을 정리하고 아이를 구하는 모습이 제법 영웅 같았다. 아이 눈에는 그와 자신이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아니, 위협조차 하지 않았으니 좋으면 좋았지 나쁘진 않았을 테다. 김남운이 아이를 구한다면, 그래 셸터로 가겠군.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아. 이대로 그 녀석이 있는 셸터로 간다면…….


“최강의 화신은 유중혁이잖아.”

“하아아?!”


고개를 숙여 생각에 빠졌던 유중혁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알고나 하는 소리일까. 성한 동아줄이 내려왔는데 녀석은 그게 뭔지도 모르고 쳐내고 있다.


“유중혁이 조금 세긴 하지만 그래봤자 악한 놈이고! 나는 정의의 편, 이랄까?”

“악한, 뭐?”

“어이, 그 놈, 쪼오끔 잘생기긴 했는데 나쁜 놈이다? 반하지 말라고?”


김남운이 아이를 달래듯 굴었다. 유중혁이 왜 나쁜 놈인지 구구절절 설명하는데 아이는 듣는 건지 마는 건지 표정이 어두웠다. 유중혁은 자신의 험담을 듣고 있는 김독자의 얼굴을 살폈다. 그 얼굴을 도통 읽을 수가 없었다. 스킬이라도 통했으면 좋았을 것을.


“뭘 알아?”

“엉?”

“뭘 아냐고.”


스킬을 쓰지 않아도 느껴졌다. 격정적이고 충동적인 감정. 지금 김독자는,


“너는 유중혁이 왜 그래야 했는지 모르잖아!”


화를 내고 있는 건가? 아이는 김남운과 몇 번 말을 더 섞더니 이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유중혁은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왜? 대체, 왜? 아이는 썩은 밧줄을 잡고 영영 놓지 않으려 든다. 비이성적이다. 감정적이다. 유중혁은 아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그걸 또 쫓아가는 자신이었다. 아니, 이건 녀석의 결말을 끝까지 보기 위함이다. 비이성적인, 감정적인 방식이 얼마나 헛된 건지 다시 한 번 보고 겪고 깨닫기 위해. 유중혁은 김독자를 쫓았다.

보아라, 얼마 가지 않아 아이는 위기를 맞닥뜨린다. 아이는 호저를 닮은 것 앞에 가만히 서서 눈을 깜빡였다.


곧 죽겠군.


유중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런 힘도 없는 아이니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상 죽을 것이다. 몸부림조차 치지 못하고,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어 뭔가를 보여줄 수도 있다. 그래, 성좌, ‘■■의 ■■’의 파편. 성좌와 관련 있으니 겨우 이 정도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발악이라도 치면, 어떤 것이라도 보여주면, 이용해줄 수 있다. 김독자. 어디 가치를 증명해봐라. 네 이용가치를 내게 보여라. 그것만이 네가 살 길이다.


유중혁은, 걸었다.

천천히 걸었다.

건물에서 지면으로 향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천천히 임했다.

지독하고 더럽도록 느리게,

김독자에게 향했다.


바람이 그의 뺨을 할퀴었다. 검은 코트자락은 크게 펄럭거리며 소리를 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작은 머리를 품에 넣고 눈을 가리고 나서야 더딘 시간이 흘렀다.


“이해할 수 없군.”

“……뭐가요?”


김독자는 물었다. 그에게 한 말이 아닌데도 아이는 되물었다. 그래서 유중혁은 담담히 대답했다.


“너도, 스타 스트림도.”


그리고 나도.


유중혁은 튀는 피를 코트로 가렸다. 코트 안쪽에 온기로 자리 잡은 아이가 곧장 닿았다. 여린 팔힘이 느껴졌다.


이제는 잘 모르겠다.


유중혁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하늘을 바라봤다.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별들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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