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삶

[중혁독자] 讀者之生 독자의 삶 5





<너 안되겠다.>


전화 너머에서 한수영이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뭐가 안 된다는 거지?”

<정신 차려, 유중혁. 내가 그 책 읽지 말라고 했는제 읽기는 왜 읽어서.>

“책은 읽으라고 있는 거다만?”

<아무튼 그 책 다시 돌려줘. 네가 그러는 꼴, 더는 못보겠다.>


유중혁은 무릎에 올려둔 책의 표지를 쓰다듬으면서 침묵했다. 꽉 막힌 벽창호 때문에 분통 터지는 사람은 한수영이었다. 그녀는 충분히 시달렸다. 지난 일주일 동안 충분히 말이다.


<책이랑 연애하냐?! 매일매일 나한테 전화해서 독후감을 남기는 건 뭔데?>


그러나 상대방은 유중혁이었고 말이 통하는 편이 아니었다.


“애초에 책을 준 사람은…….”

<그래서 지금 후회하잖아!>


읽기를 중단한 이후, 한수영은 책이 꺼림칙했다.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빴기에 어디엔가 넘겨버리고 싶었다. 함부로 처분하기에는 화를 입을까 조심스러웠다. 행운을 산다는 명분 하에 돈과 함께 팔아치웠다. 이 정도면 화를 입지는 않겠지. 결과적으로는 책을 떼어낼 수 있었지만 양심이 찔렸다. 가장 안 읽을 것 같은 놈에게 팔았더니 홀라당 읽어버린 것이다. 꿈을 사고 파는 것처럼 정말로 자신이 그의 행운을 산 것 같아 두려웠다.


<이런 거 믿는 편은 아니지만 그 책, 귀신 들렸거나 악마 그 자체 아니야?>

“네가 판타지 소설 작가라는 건 알고 있지만…….”

<닥쳐.>


당장이라도 끊어버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낸 한수영은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선택하는 사람은 유중혁이지만 마지막까지 양심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지, 현실이 아니야.>

“알고 있다.”

<그래, 정신차리고. 그 책 빨리 버려라?>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유중혁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김독자와 읽는 자신의 시선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다. 변하지 않는 명제. 유중혁은 책을 펼쳤다. 김독자는 점점 자신을 무시했다. 아니, 잊어버린 걸 수도 있다. 김독자의 삶은 바빴고 여유가 없었으니. 유중혁은 책장을 넘겼다.

유중혁은 훌륭한 독자가 아니었다. 독자라기보단 작가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깨끗한 물에 먹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모든 물이 더러워지듯, 작가는 절대로 순수한 독자가 될 수 없다. 조잡한 손으로 세계를 꾸며내는 인간은 순진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었다. 작가는 지금도 책이라는 세상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세계의 구성체계를 파헤치고 있다.

책을 완독한 유중혁은 입을 열었다.


“이해할 수 없군.”


[불행한 삶을 살아온 김독자는 좋아하는 소설과 하나가 됐다. 그렇게 김독자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


납득할 수 없는 엔딩이었다. 졸작이었다. 이런 엔딩이 어디에 있냔 말이다. 유중혁은 마지막 장을 이해할 수 없어 앞으로 넘겼다. 그러나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백지였다는 듯 책장은 텅 비어있었다. 급하게 마지막 장으로 돌아왔지만 글자들은 이미 증발했다.


김독자는 자신에게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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